서울 삼성 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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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4 시즌에 대한 내용은 서울 삼성 썬더스/2023-24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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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이름의 NBA 농구팀에 대한 내용은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FEAR THE THUNDER[8]
HEAR THE ROAR
즐겁게 나눠요 우리 모두 다 함께
파워를 느낄 수 있는 삼성 썬더스
사랑해 사랑해 모두 이길 수 있죠
서울 삼성 썬더스[9]
한국프로농구의 프로 농구단. 연고지는 서울특별시, 홈구장은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잠실실내체육관이다.
전신은 삼성 농구단 - 삼성전자 농구단 - 수원 삼성 썬더스. 서울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부터는 서울 삼성 썬더스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참고로 현존하는 남자 프로농구단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팀이자[10]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구단의 모그룹이 변하지 않은 전통의 구단이다.[11]
2000-01 시즌 이후, 중립 지역이었던 서울 연고가 허용되면서 서울 SK 나이츠와 함께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연고 이전 초창기에는 잠실실내체육관을 SK와 함께 사용했다가, SK가 잠실학생체육관으로 이사가면서 잠실실내체육관의 유일한 홈팀이 되었다.
농구대잔치 시절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마스코트인 블레오를 이쪽에서 써먹기도 했으며, 럭비단이나 배드민턴단, 배구단에서도 써먹었다. 물론 야구와는 다르게 타이즈 복장이고 눈은 검정색이지만. 수원 삼성 썬더스로 프로 창단 시에는 '썬더보그'라는 머리와 꼬리에 천둥번개 모양이 달린 고릴라 마스코트를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 마스코트는 천이와 둥이.
삼성스포츠의 프로 스포츠단 중 수원 삼성 블루윙즈, 삼성 라이온즈,
기존의 모기업은 삼성전자였으나 2014년 9월 1일부로 제일기획으로 전환되었다.
2. 우승 기록[편집]
3.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서울 삼성 썬더스/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운영 방식[편집]
농구 특성상 샐러리캡 제도 내에서 충분한 소진율을 기록하던 팀이다. 필요할때 대형 FA를 영입해서 전력을 보강하였는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2000년대 중반의 서장훈과 2010년대 중반의 문태영이다. 이를 통해 단기간내에 전력 상승을 추구해서 호성적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무능한 운영 능력을 보여주면서 암흑기가 장기화되고 있다. 특히 이상민 감독 체제를 오랫동안 연임시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통해 삼성의 성적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다. 이러면서 2010년대 부터 2020년대까지 이상민 체제에서만 최하위를 무려 3번이나 기록할 만큼 KBL 의 대표적인 최약체팀으로 자리잡고 있다.
선수영입 무브를 보면 가히 최악 그 자체인데, 네임드급 선수를 영입을 해도 꼭 전성기가 한창 지난 상태로 영입을 하고 있다.
5. 영구결번[편집]
영구결번은 10번으로 김현준의 현역 시절 등번호이기도 하다. 이상민과 서장훈의 11번이 영구결번될 뻔 했으나[13] 영구결번 지정 한 시간만에 철회했다. 영구결번 배너는 현재의 파랑색이 아니라 농구대잔치 시절의 빨강색 유니폼이다. 2022-2023 시즌 기준으로 영구결번 배너는 잠실실내체육관 천장에 액자 형태로 걸려있다.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다른 팀들에 비해서 삼성이 유독 영구결번 기준이 짜다고 말한다. 똑같이 영구결번이 1명인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는 KBL 출범 직전이던 1996년에 창단했지만 삼성은 실업 농구단 시절까지의 역사를 포함해 40년이나 되었는데도 단 1명 뿐이다. 김현준도 생전에 영구결번이 된 것이 아니라 사후 지정된거라 (레전드인 것과는 별개로) 추모의 의미가 강해 사고사하지 않았다면 현재까지도 지정되었을지 의문이다.
6. 상징적 인물[편집]
- 상징적 인물을 이야기하면 역시 현재까지 삼성의 유일한 영구결번인 김현준을 이야기 할 수 있다. 모기업의 이름을 따서 전자 슈터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며 삼성전자 시절 농구대잔치에서 기록을 써내려간 레전드 선수다.
- 두 번째 인물은 김진이다. 김진은 선수 시절 커리어를 삼성전자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선수다. 특히 선배 김현준, 동기 오세웅과 함께 트리오를 형성하면서 삼성전자의 1980년대를 이끌었다. 선수 시절 주장이기도 했다. 다만 1980년대 스타였기에 21세기 농구팬들에게는 삼성 선수로서의 인지도가 적고 지도자 생활도 대구 동양 시절의 전성기와 전자 라이벌이기도 한 창원 LG의 신바람 시절을 보냈기에 아는 사람만 아는 편이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렇듯 숨어있는 삼성의 레전드로 꼽힌다. 현역 시절 등번호는 12번이었다. 하지만, 동양-LG의 색이 강하면서 오히려 모교 대선배지만 실업 라이벌이었던 이충희가 더 부각되는 편이다.
- 세 번째 인물은 문경은이다. 선수 생활 말년을 SK에서 은퇴했고 영구결번도 지정되면서 SK맨 이미지가 강해졌지만[14] 그가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직업 선수 생활을 처음 시작한 팀은 삼성전자 실업 농구단이었고, 커리어 하이 시즌도 삼성에서 보냈으며 삼성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했고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삼성을 떠나야 했던[15] 삼성의 레전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레이드와 함께 2005-2006 시즌 중 SK 나이츠의 선수가 된 이후 D리그 코치를 거쳐 LTE급 감독이 된 후 SK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18년만에 서울 SK 나이츠를 우승시키면서 이젠 SK 레전드라고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문경은이 가고 우지원이 아닌 서장훈이 온 격.
- 주희정은 KBL 출범 이후 진정한 삼성의 레전드다. 1998년 입단 이후 2005년까지 전성기를 보내기도 했다. 김동광 감독의 직속 제자였는지 이적과 함께 세월이 흐른 뒤 친정에 돌아온 삼성맨이다. 김동광 감독의 트레이드 이후 강혁과 함께 가드 왕국 삼성의 핵심이었다. 물론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리딩이 부족하고 슛이 약한 편견을 오직 반복된 연습과 훈련 그리고 회고로 최고에 오른 KBL 레전드 12 출신이다. 2000-01 시즌 팀 유일의 KBL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2005-06 시즌 스승 김동광 감독의 부름을 받고 SBS 스타즈의 후신인 KT&G 카이츠에서 제2의 전성기를 보냈다. 삼성 출신이었던 김진 감독이 직접 트레이드로 떠난 SK 나이츠에서도 식스맨을 받아들이면서 희생을 했고 마침내 친정으로 돌아와서 2015-16 시즌과 2016-17 시즌을 보낸 이후 은퇴를 하게 되었다. 은퇴 이후 모교로 돌아가면서 학생신분과 함께 코치를 시작하면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고려대 감독대행을 거쳐 마침내 고려대 농구부의 감독이 되면서 제자들을 지도하면서 향후 삼성의 지도자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 강혁은 다음은 2000년대 초반부터 중후반까지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한 삼성의 진정한 프렌차이즈 스타다. 1998년 입단 이후 식스맨을 거쳐 2005년부터 베스트로 성장한 케이스다. 삼성이 직접 키운 가드 왕국의 핵심. 강혁은 삼성에 입단한 후 꾸준히 기량이 발전하였다. 식스맨으로 뛰면서 최우수 후보선수상을 수상했었던 강혁은 그뒤 군복무 후 다시 복귀해서 기량이 상승하다가 마침내 2005-06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팀의 7전 전승 플레이오프 우승을 이끄는 대활약을 펼치면서 생애 첫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다. 후에도 꾸준히 주전 가드로 활약하면서 은퇴하면 차기 삼성의 지도자 자리는 사실상 예약된 것처럼 보였었는데... 어느 금지어가 감독으로 부임한 뒤 강혁을 트레이드시키면서 결국 삼성에서 끝끝내 은퇴를 하지 못했고 전자랜드에서 은퇴했다. 훗날 지도자로 삼성에 돌아올 가능성도 있지만 트레이드 당시 본인 스스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기에 지도자 강혁의 삼성 컴백이 쉽게 이뤄질 가능성은 미지수다. 실제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삼성의 라이벌팀인 LG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고, LG 코치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유도훈 감독의 부름을 받고 전자랜드로 갈 정도로 가드 코치로서 능력은 있다. 물론 수석코치는 아니지만 향후 보아야 할 삼전드.
- 이규섭은 KBL 출범 이후 삼성 썬더스의 원 클럽 맨이며, 2000년에 입단 후 2013년까지 뛰었다. 이는 삼성이 프로 전환 이후 처음으로 가진 원클럽맨이다. 데뷔 시즌에 2000-01 KBL 통합 우승을 경험했고 2005-06 KBL 플레이오프 우승을 경험했다. 추가로 대표팀에 승선하면서 국제대회 경험도 풍부한 삼성맨이다. 추가로 삼성의 프로 전환 후 처음으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스타 군단 삼성의 유일한 성골로 2012-13 시즌까지 14년간 삼성 썬더스의 선수로 활약했다. 말 그대로 KBL 출범 이후 삼성의 역사와 함께한 성골 중의 성골이다. 현역에서 은퇴 이후 2014-15 시즌부터 코치를 거쳐 2017-18 시즌부터 사실상 수석코치를 맡고 있다. 코치로서도 삼성 원클럽맨 커리어를 이어가는 중이고 이상민이 사퇴한 이후 삼성의 감독대행까지 하게 되었다.
- 삼성 썬더스는 KBL 레전드지만 특정 팀의 상징으로 남지는 않은 특이한 커리어를 가진 서장훈과도 긴 인연이 있다. 서장훈의 프로 경력 중 가장 오랫동안 소속돼 있던 팀이 삼성[16] 이다. 이 때문인지 삼성은 서장훈과 현 감독 이상민의 번호로 11번을 영구결번하려다 이상민의 현대-KCC맨으로서의 상징성과 서장훈의 저니맨 커리어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실패했다. 정작 서장훈이 입단하기 전에는 삼성이 악연과도 같은 팀이었다. 서장훈이 목 보호대를 차고 몸싸움에서 힘겨워하며 커리어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엔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가해졌던 타 팀들의 린치 수준을 방불케 하는 수비가 결정적이었는데, 삼성전자는 이 중에서도 심했던 것.[17] 하지만 서장훈이 첫 FA에서 삼성을 선택하면서 모든 게 바뀌게 된다. 비록 대학 선배 우지원이 보호 선수 제외로 팀을 나가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서장훈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팀의 9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대기록의 시작점이 됐다. 또한 2005-06 시즌 정규리그 MVP를 거머쥐면서 현재까지도 팀의 마지막 우승인 2005-06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비록 그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판짜기가 주특기인 안준호 감독이 서장훈을 의도적으로 배제했고 이후 그 때문인지 갈등이 생겨 KCC로 이적했지만, 서장훈은 삼성에서 역사를 썼다. KCC로 팀을 옮길 때에는 현재까지도 삼성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인물을 자신으로 인해 삼성에 불러오기도 했다. 바로 그의 보상 선수로 삼성에 온, 현 감독 이상민.[18]
- 이상민은 현대-KCC의 레전드다. 하지만 선수로서의 마지막 3시즌과 코치, 감독 커리어는 서장훈의 FA 당시 보상 선수로 온 삼성에서 이어가고 있다. 더구나 석연찮았던 이적 과정 이후 이상민이 KCC를 비판했고, 이후 KCC는 삼성에서 은퇴한 이상민의 영구결번을 선수 의사 확인없이 결정하며 관계가 악화됐으니 삼성 입장에서는 가드 왕국의 선봉장이자 단일 재임 기준 구단 역대 두 번째로 긴 재임기간[19] 을 가진 감독을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삼성 이적 이후 이상민은 노쇠화를 피해갈 수 없다 보니 기록의 하락을 피하진 못했다. 그러나 개인 최다 득점인 35점을 마크하고, 플레이오프에서 친정 KCC를 깨는 등 삼성에서 핵심 역할 자체만큼은 제대로 했다. 더구나 스타 플레이어와 마케팅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옆집 SK 나이츠에 뒤져 서울 농구팬들의 마음을 못 얻었던 삼성을 자기 팬덤 하나만으로 인기팀으로 만들었다. 김상준으로부터 시작돼 이상민 시기까지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암흑기에도 잠실실내체육관 관중석을 지킨 팬들의 일부 기반 또한 이상민을 응원하는 사람들이다. 은퇴 후 지도자 연수와 코치를 거쳐 이상민은 삼성의 감독이 됐고, 암흑기에 간 팀을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에 진출시키며 불꽃을 태웠다. 그의 삼성 사령탑 생활은 현재 진행형이다. 2020-21 시즌을 앞두고 2년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만약 재계약 기간을 모두 채운다면 역대 삼성 감독중 가장 오랫동안 감독직을 연임하게 된다. 하지만 2022년 1월 성적부진과 천기범 음주운전의 책임을 지고 감독에서 물러났다.
- 삼성의 2010년대를 설명할 수 있는 선수. 이관희는 프로 초창기에는 주로 식스맨으로 출전했고 그마저도 실수가 가끔 나오는 바람에 김동광 당시 감독에게 "볼이 뜨겁냐?"는 개그성 지적까지 받았다. 더구나 경기 도중 상대팀 선수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보니 멘탈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상무에 다녀온 후 특유의 스피드와 운동 능력을 통한 수비로 양동근 등 타 팀의 주요 전력을 묶으며 가능성을 보이더니, 3점슛을 장착한 이후엔 아예 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17-18시즌 40%대의 3점슛 성공률(전체 4위)을 마크하며 완전한 주전이 됐고 FA를 챙기는 등 초창기에 비해 크게 나아지며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됐다. 대대적인 변혁기였던 삼성에서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단 한순간도 삼성을 떠나지 않았던 선수이기도 하다. 안준호 감독의 말년부터 김상준 감독, 김동광 감독, 이상민 감독 시기까지 이적없이 삼성 소속을 유지한 유일한 선수였다. 하지만 2021년 결국 팀의 숙원이었던 포인트가드를 대가로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했다.
- 안준호는 선수 시절을 삼성 썬더스의 전신인 삼성전자 농구단에서만 뛰다 은퇴한 인물이다. 하지만 삼성에게 있어 선수 시절보다 감독 시절 그가 끼쳤던 영향이 매우 크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역대 삼성 감독중 최장기간 연임하면서 1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기록했을 만큼 삼성의 중흥기를 이끈 대표적인 명장이다. 특히 2005-06 시즌 플레이오프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7전 전승이라는 어마어마한 대 업적을 이뤄내며 우승을 기록한 시즌은 아직도 많은 삼성팬들이 그리워하고 있다.
- 김동광은 수원 삼성 썬더스 시절 감독 부임 후 포인트 가드 주희정을 영입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슈팅 가드 강혁을 지명하면서 가드 라인 보강에 성공하면서 전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또한 외국인 선수 영입도 휼륭하게 해내었고, 기존의 문경은 외에도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한 이규섭까지 가세하면서 포인트 가드 주희정-슈팅 가드 강혁-스몰 포워드 문경은-파워 포워드 아티머스 맥클래리-센터 무스타파 호프라는 정통 베스트 5를 시작으로 식스맨에 가드 김희선과 포워드 강병수와 이규섭 그리고 센터 박상관과 이창수까지 선수층도 좋아졌고, 이 기세를 바탕으로 2000-2001 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4강 플레이오프에서 SBS 스타즈를 3승 1패로 창단 첫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고, 2000-2001 KBL 챔피언결정전 상대인 전자라이벌 LG 세이커스를 4승 1패로 꺾고 통합 우승을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이는 현재까지 삼성의 유일한 통합 우승 기록이다. 이후 KBL 출범 원년 시절 부임했던 또 다른 친정인 SBS 스타즈 감독에 재복귀와 인수된 KT&G 카이츠 감독을 재임하면서 방송 해설과 KBL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내기도 했다. 더 이상의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삼성맨의 이미지가 희석되던 시점이던 2012-13 시즌을 앞두고 60대 최고령의 나이에도 놀랍게도 다시 삼성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이때 인터뷰에서 무너진 명가 삼성을 재건하기 위해 다시 돌아왔으며 농구 열정을 불태우는 의지라고 밝혔고 이는 많은 삼성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결국 끝까지 최선을 다한끝에 전년도 최하위팀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하면서 많은 칭송을 받게 되었다. 비록 다음 시즌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했지만 김동광이 보여주었던 삼성에 대한 애정은 SBS 시절보다 더 강했으며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참고로 현재까지 역대 삼성 감독중 가장 오랫동안 감독직을 역임한 감독이 바로 김동광이다.
7. 파이널 MVP[편집]
8. 역대 감독[편집]
- KBL 출범 이후만 기재